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때리기 1가 끊이지 않고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교총은 무려 생활지도 담당 교원에게 ‘준사법권을 부여하라’는 요청을 하고 나섰다. 2
사실 이건 지금 막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지난 2월에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한 중학생에 대해, 교사가 직무유기로 사법처리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 직후에 안양옥 회장이 대외적으로 했던 발언이기도 하다. 이번엔 보다 본격적으로, 교과부와의 협의위에서 이 주장이 나온 것이다.
물론, 검토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미친 짓이다. 체벌 금지의 당위성을 주장한 글에서도 썼듯, 교사의 권한은 이미 지나치게 강하다. 나는 해당 글에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다른 어떤 공적 기관의 감시나 제재를 받지 않기에, 권한 남용이 발생했을 경우 대처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도 없으며, 교사에게 그런 정당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교사에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여 사적 제재를 가할 권한, 즉 체벌을 할 권한을 주어선 안 되며, 이른바 ‘교권의 추락’은 오직 체벌에 의존해 학생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억압해왔던 비정상적인 환경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적은 바 있다.
그런데 체벌을 금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반대로 그들에게 더 많은, 다른 제재로부터 자유로운 권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교총이다. 서울신문의 기사 3에서,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교사가 학교폭력 예방에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교사에게 준사법권을 줘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실추된 교권을 되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왜 만들어진 것인지, 그 취지나 의미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물론 이해할 의지도 없으리라 보지만), 최근 불거지고 있는 학교폭력의 책임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고 있는 대단히 저열한 발언이다.
먼저, 학생인권조례는 그 이름으로부터 알 수 있듯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조례이다. 수십 년간 학생의 인권은 교사에 의해 짓밟혀왔다. 일기장 검사부터, 소지품 검사, 체벌, 머리카락 길이 제한, 언어폭력 등, 교사들은 학생과의 권력관계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너무나도 간단히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논의나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학생 인권의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교사들은 체벌로 응해왔음을 기억하라. 오랜 기간의 싸움이 겨우 낳은 결실, 그것이 학생인권조례이고, 이를 통해 비로소 학생들은 스스로의 천부적 권리를 지킬 방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왜 학생들의 인권이 이렇게 침해되어왔고, 조례까지 만들어야 할 상황이 되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들에게 너무 큰 권한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교사가 행하는 체벌에는 기준도 없고, 지속적으로 감독하는 사람도 없으며, 후에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경찰도 함부로 민간인에게 손을 댈 수 없는데, 교사는 너무나도 쉽게 폭행을 행사한다. 헌법에 명시된 인권을 지극히 자의적인 판단으로 침해할 권리가 일개 교사에게 있는가? 교사를 과연 일정 합의에 따라 개인의 권리를 제한적으로 침해할 수 있도록 용인된 ‘공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교사의 권력은 오히려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판에, ‘특별사법경찰권(준사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총은 상황파악을 못해도 너무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총이 교사에게 부여할 것을 주장하는 준사법권이란, 임의 동행이나 체포 등 인신구속을 제외한 현장조사, 자료영치, 압수수색 등 일정한 수준까지의 권한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교총의 안양옥 회장은 지난 2월, 준사법권을 교사에게 부여할 것을 주장하며 ‘수사권과 전문화된 수사 부서도 없이 객관적 사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준사법권이 부여되면, 학생을 특정 교실로 소환하거나, 소지품을 임의로 검사하거나 압수할 수 있고, 학부모를 강제로 소환할 수도 있다. 근데, 과연 준사법권 부여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학교 폭력을 막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될까?
학교폭력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이미 아주 오랜 시간 학교내엔 폭력이 자리했다. 일진회의 존재가 대두된 것도 2005년의 이야기다. 그때 학생인권조례는 없었다. 사실상 초(헌)법적인 권리를 가졌던 그때 당시 교사들은, 학교폭력의 방지를 위해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내어 사건의 정황을 캐묻거나, 소지품 검사/압수, 학부모 소환, 체벌 등에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당시에도 학교 폭력 문제는 지금만큼이나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학교 폭력이 발생할 경우 가해자를 불러 교내 봉사를 시키거나, 혹은 그 자리에서 체벌을 가하고 끝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이런 대단히 안이하고 무성의한 교사들의 태도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학교폭력을 조장한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 탓이 아니며, 권한이 축소된 (사실 권한이 축소되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웃기다. 헌법에 따르자면,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 권한이 없었어야 했다) 탓도 아니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은 데엔 교사들 본인들의 책임이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무능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며, ‘적절한 권한이 없어서’라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총은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교권 추락 운운하며, 마치 그들이 예전과 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면 학교폭력을 뿌리뽑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틀렸다. 능력도, 의지도 없는, 또한 기본적인 인권 의식이 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보다 더 큰 권력은 단지 그들의 사적 욕구와 게으름을 추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통제받지 않는 거대한 권한을 그들이 지난 수십 년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를 돌이켜보면, 그들에게 다시 또다른 종류의 권력을 부여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어렵게 얻어낸 질서와 권리가 다시 붕괴될 우려가 너무나도 크다.
2.
앞서 말했듯, 이런 그들의 움직임은 처절하다 못해 처량하다. 수십 년간, 폭력을 통해 공고하게 유지되어온, 교사-학생이라는 부당한 권력관계는, 최근에 와서야 겨우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과거에 교사들은 논리적 근거나 당위성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무작정 ‘따르라’고 강요하고, 이 명령을 학생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체벌을 통해 강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런 절대적인 권력,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굳게 형성된 기득권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과정, 다시말해 ‘정상화의 과정’이, 교사들에게는 대단히 비위상하는 일이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최근 보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추하고 한심하다. 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는가, 그들에게서 왜 권력을 빼앗아야 했나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오로지, 그들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계산하고 필사적으로 이를 되찾으려 하는 노력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교권 추락’이라는, 그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스스로를 하늘 같은 절대자로 여기던 낡은 관념이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런 그들의 모습들, 사적 욕망을 위한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그들의 모습들은, 학생 인권조례의 존재의 필요성, 그리고 그 당위성에 더 힘을 실어준다. 교사는 결코 공익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도 일반인과 다를바 없는, 개별적 욕망과 때때의 감정에 충실한 인간들일 뿐이다. 그런 그들을, 대체 어떻게 믿고 ‘준사법적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을 어떻게 믿고 학생에 대한 체벌을 허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교사들에게 바라는 바는 간단하다. 교사의 본분을 생각하라. 그리고, 학생의 가치를 인정하라. 교사에게 필요한 건 초헌법적인 권력이나, 특별경찰사법권이 아니다. 학생을 권력구조의 하부에 위치한다고 보는 계급의식, 권력의식, 그리고 기득권 의식. 그대들의 추락한 교권을 회복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기 위해선, 먼저 교사들 자신부터 지난 수십 년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Share this Post
Footnotes:
조선일보, “[기자수첩] 사진 3장의 충격…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나”, 2012.4.2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23/2012042300074.html ↩
술을 마셨다. 4월 11일에 마신 술 이후, 처음으로 ‘괴로움을 잊기 위해’ 마신 술이다.
최근에 들어, 여러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제’란, 임금 미지급, 노동재해 불인정, 직장에서의 집단 따돌림 등의 노동문제를 뜻한다.
한국에서도 물론 노동문제를 줄곧 지켜봐왔다. 쌍용차, 재능교육, 한진 중공업, 한일 병원.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건 항상 신문 지면을 통해서 혹은 트위터의 트윗을 통해서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들 개개인이 어떤 고통을 안고 있는지, 깊히 고찰해볼 기회도, 이해할 기회도 없었다. 그저 막연히, 막막하겠구나, 힘들겠구나, 고통스럽겠구나 상상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직접 노동자를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들으며, 지금까지의 그런 안이한 생각이 보다 구체화되고, 진지해졌다.
10년간 한 거대 물류 업체에서 운송업에 종사하며 트럭을 몰고 택배를 배달하던 사람이 있다. 그는 2008년까지 업무 중 3번 부상당했으며, 그 중 한 번은 왼쪽 다리를 14바늘이나 꿰매고도 다음날 출근해야 했다. 산업재해 인정은 그 중 2번밖에 받지 못했다. 업무는, 하루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휴식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근로시간 기록표엔 하루 1시간 휴식을 취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렇게 온 몸을 던져가며 일해왔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2009년 9월 60kg의 짐을 나르다가 어깨를 다쳤다. 그는 산재 신청을 하려 했지만, 그의 직속 상관이 너무나도 비협조적이었다. 본사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조금도 협조를 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10월까지 이를 악물고 일을 했으나 결국 한계에 부딪혔고, 11월부터는 일을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산재 대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치료비조차 받을 수 없었고, 이때부터 고독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2011년, 그는 이혼했다. 12세, 그리고 갓 태어난 자식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더 이상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그와, 그가 싸우는 회사로부터의 협박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랑했던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식들을 만나겠다고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상관은 거짓말을 거듭했다. 그가 회사로부터 받아온 노동시간 기록표는 확실하게 조작되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할당량은 해당 팀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동시간은 한 달에 10일 이상이 하루 단 1시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가 취한 적 없는 휴식시간도, 노동시간 기록표에는 1시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보다 확실한 확인을 위해 그는 회사에 타임카드 정보를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2012년 4월, 우리를 찾아오기 전까지, 그를 도우려 손을 내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어떤 단체도 그를 구제해줄 수 없었을 뿐더러, 그를 구제하려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어용단체였다. 회사 내 상담실에 상담했더니, 그에 관한 소문이 전 회사에 쫙 퍼져버렸다. 그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지금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생활은 부모가 받는 연금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는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805일 어치의 임금과, 직장 상사로 인해 받은 언어 폭력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사례는 보기 어렵지 않다. 저녁에 우리를 찾아온 사람은 직장 상사로 인한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지난주에 본 사람은 1년 이상 회사에서 “너는 우리 회사에서 아무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퇴직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지난주에 가두투쟁을 위해 함께 했던 노동자는, 회사에서 극한 수준의 야근을 강요당하여, 피가 오줌에 섞여 나올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입고 있었다.
끝이 없다. 부푼 꿈을 안고, 주변의 부러움을 안고 졸업 후 처음 들어간 직장. 하지만 3개월이 지나지 않아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받고, 언어 폭력을 받으며 관둔 케이스. 엄청난 시간의 야근을 했지만 제대로 야근수당을 받지 못한 케이스.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한 케이스.
그들은 하나같이 대단히 큰 정신적 타격을 입고 있었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직장에 정상적으로 다시 취직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케이스가 다반수였다. 그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정은 파괴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체교섭을 할 여유도, 민사소송을 진행할 경제적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상 아무 잘못이 없었다. 단지 그들의 능력을, 해당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의 체력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만큼의 업무량을 소화할만큼 ‘초인적이지’ 못했을 뿐이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만큼 열심히 일하다가, 힘에 부쳐 부상을 입었을 뿐이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들은 보상받지 못했다. 보상받기는 커녕, 그들의 ‘평범한 삶’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들의 ‘행복’이, 아주 작은 행복이 자본에 의해 너무도 잔인하게, 인간의 발에 밟히는 개미처럼 찌부러졌다.
너무나도 슬프다. 노동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아주 평범한 삶, 아주 평범한 행복을 위해 85호 크레인에 올라갔고,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고, 단식투쟁을 하고, 밧줄로 몸을 묶고, 사랑하는 딸을 떠나보냈다. 회사, 자본은 이 가운데 아무 손해도 입지 않았다. 어떤 노동자가 이혼하고, 딸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데, 자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는 외로운 투쟁을 지속해야 했다. 수년에 이르도록 그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을 지속했다. 자본은 묵묵부답이었다.
공정사회. 자유시장.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권력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고, 그들의 관계는 ‘공정’은 커녕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다름 없다. 공정? 자유? 그런 건 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말에 불과하다. 어디까지나 ‘이상’, ‘유토피아’에 다름 없다. 공정사회는 없다. 자유시장도 없다. 노동자는,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경우 스스로 모든 증거를 수집하고, 이의 부당함을 행정적 혹은 사법적 절차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인가. 모든 정보는 사측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측은 노동자의 정보 공개 요구에 굳이 응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자본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고 있어도 된다. 노동자의 인생, 행복은 1초 1초 파괴되어간다. 결코 평등하지 않다. 노동자가 과연 사용자와 같은 조건에서 ‘노동’이라는 가치의 거래를 협상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수요는 적고 공급은 넘친다. 특히 교육받지 못하고, 숙련되지 않은 노동력은 썩을 만큼 존재한다. 경제 논리속에 개인의 인생과 행복은 너무나도 쉽게, ‘실업율’이라는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수치’로 무시당한다.
누가 자본에 개인의 행복을 파괴할 권리를 부여했는가. 누가 자본에 개인의 생명과 가족을 앗아갈 권리를 부여했는가. 누구도 그런 권리를 부여한 적 없다. 노동자도, 결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노동을 팔지 않았다. 그런데 왜인지, 노동자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담보로 노동하고 있다. 대체 왜 이런가. 대체 누구 좋으라고 이런 사회가 되었나. 이 사회에 노동자의 입지는 과연 존재하는가. 노동자의 권리란 게 그 잘난 경제학과 경영학에 존재하기는 하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10조에는, 국민의 행복 추구권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충분히 보장되고, 보호되고 있는가. 여기에 과연 당당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과연 존재할 것인가.
일본 오사카시의 시장으로 하시모토 토오루橋下 徹 씨가 취임한 건 지난 12월의 일이다. 그는 시장이 되기 전엔 2008년부터 오사카부의 지사로 직무를 수행해왔고, 폭력단과의 스캔들로 인해 2011년 11월 사임했다.현재는 지역 정당이자 현 오사카부/오사카시의 다수 정당이자 우익 정당인 오사카 유신회의 대표이다. 그는 오사카의 재정상태가 위기임을 선언하고 공무원의 수당을 큰 폭으로 깎는 등의 정책을 수행했다. 또한 ‘지사직이라는 독재자적 직책을 민주적으로 통제받기 위해’ 정보공개실을 설치하는 등 개혁적 행보를 보였으나, 그의 극우적 성향은 뒤이은 행보에서 여실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본국 헌법 제 9조는 군사력의 포기, 그리고 침략적 전쟁의 부인을 명문화하고 있다. 1 그런데 하시모토 씨는 헌법 제 9조를 개헌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는 지난 2월 트위터에서, 헌법 9조의 개헌 필요성을 주장하며, “(..)하지만, 일본에선, 지진재해에 그렇게나 단결과 협력을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폐기물 처리는 모두 거절. 모든 건 헌법 9조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2라는, 논리성이 완전히 결여된 말도 안 되는 트윗을 했다. 그는 또한 지난 24일, 보도진에게 “2년을 들여 의논하고, 국민투표를 한다. 거기까지가 오사카 유신회가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일본국의 모습을 특징짓는 천황제와 같은 레벨의 문제”라는 인식을 나타내고, “일본인 전체가 헌법 9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오고 있다”라는 말로, 헌법 9조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3
그는 2008년 도지사로 재임할 당시, 전국학력평가에서 오사카부의 성적이 저조한 것을 보고 오사카부의 교육이 비상사태임을 선언, 이른바 교육계획을 구상한다. 하시모토가 가진 교육론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규제’ 그리고 ‘강제’이며 (“‘교육이란 2만% 강제’다” 4),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선 일단 공무원인 교사들을 엄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결과가 ‘오사카부 교육기본조례’이다. 이 조례는 교육행정에 대한 도지사의 관여를 명확히 하고, 불량교사를 철저히 제거하는 한편, 학교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5. 그에겐 자유와 인권과 관한 인식이 크게 결여되어 있고, 국가 혹은 집단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개인을 집단에 맞추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재”라는, 리더십에 관한 하시모토의 발언이나, ‘공무원 기미가요 기립제창 조례’는, 그의 전체주의적/권위주의적 의식이 꽤 위험한 수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조례의 정식 명칭은 ‘오사카부의 시설에 설치된 국기의 게양과 교직원에 의한 국가의 제창에 관한 조례’. 교직원들에게는 기미가요 기립제창의 의무가 부여된다. 비록 이 조례는 처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기미가요에 대한 기립제창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없고, 이에 대한 징계 근거를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지난 2월 말, 조례 이후 처음 있었던 졸업식에서 6개 학교에 8명의 기립제창 거부 교사가 있었고, 오사카부의 교육위원회는 이들을 직업명령 위반으로 징계 처분할 방침을 밝혔다. 6
게다가 3월 2일에 하시모토 시장은 시 직원의 문신을 금지하는 복무규율을 만들도록 담당부국에 지시했다. 발단은 지난 10월, 한 아동사회복지시설의 남성직원이 성희롱 혐의로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일이었다. 해당 직원은 시설 내 아이들에게 자신의 팔에 그려진 문신을 보이며 큰 소리를 내는 등의 행위를 했다 (문신을 보이며 겁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하시모토씨는 “문신을 한 상태로 정규직원이 될 수 있는 업계가 공무원 이외에 있는가”라는 발언을 하며, 문신을 지우는 시술을 받게끔 하는 방안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 이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인데, 애초에 문신에 대한 부정적 가치판단은 하시모토 개인의 것일 뿐이며, 문신을 한 사람은 공무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주장도 그 논리가 대단히 조악하다. 게다가, ‘문신을 할 자유’를 강제로 빼앗고 이에 대해 제거 시술을 받게끔 강제한다고 하는 발상은, 인권, 특히 신체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몰상식하다.
이런 하시모토와 오사카 유신회의 행보는 당연하게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비판자 중 한 명 (홋카이도 대학 야마구치 교수)은 그를 파시즘에 빗대어 “하시즘”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어냈다. 오사카에서 열렸던 집회에서는, 야스쿠니 문제 등 국가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지속적으로 피력해온 철학자 타카하시 교수가 “하시모토 지사의 교육기본조례안은, ‘교육파괴기본조례’라고 말해야만 한다” “지사를 천황으로 하는 천황제라고도 할 수 있는 오사카부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라며 그를 강하게 비판했다. 8 테즈카야마가쿠인 대학의 야쿠시인 교수는 그를 “양립할 수 없는 군대식 관료주의와 시장원리주의를, 때와 장소에 맞춰 나눠 말한다. 주민을 대체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가”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권과 교육 문제 그리고 헌법 9조에 관한 하시모토의 사상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그와 오사카 유신회는 인기가 있다. 지난 2011년 11월, 부지사를 관두고 시장선거에 출마하여 다시 시장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하시모토의 지지율은 나쁘지 않다. 지난 2월 11일, 12일 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오사카 유신회가 국회에서 영향력을 가질 정도의 의석을 확보했으면 한다는 대답이 무려 54%에 이르렀다. 9 하시모토와 오사카 유신회는 결코 “극우 꼴통”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지 않았다. 2008년 그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반응을 봐도, 하시모토의 인기를 알 수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네티즌들의 우경화는 뚜렷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을 감안해도 꽤 높은 인기다. 특히 헌법 개정이나, 기미가요 반대 교사에 대한 징계 기사에서는 그의 지지 댓글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인기에 대해, 아사히 신문은 하시모토의 주 비판자인 몇 사람을 취재하여 이유를 물었다. 야마구치 교수 (정치학)는 “기성 정당이 침체된 가운데 정치의 축이 보이지 않으니, 기대가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같은 홋카이도 대학의 나카야마 준교수 (정치학)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고, 불안한 마음을 안은 국민에게서 ‘구세주대망론(救世主待望論)’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한다. 정신과의사 카야마 씨는 “흑백으로밖에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불안을 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정치가가 지지를 얻는 것은, 유권자가 불안정한 상태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라고 분석한다. 10
2.
“하시즘”이라는 표현을 봐도 알 수 있듯, 오사카시와 일본 사회를 보면 전형적인 파시즘의 특징들이 드러나고, 과거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 과정이 현대 일본에 놀랍도록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사회는 제 2세계 대전과 패전에 대한 트라우마와 히스테리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끊임없이 지난 날을 정당화하며, 일본이 천황을 중심으로 단결할 것과 자위대 이상의 무장 세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만약 그들이 패전하지 않고 독일과 함께 세계를 제패했다면, 국제사회와 역사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미국이나 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열등감에 다름 아니다.
3.11 지진재해 이후 일본의 TV에는 ‘힘내자, 일본’ ‘우리는 할 수 있다’ ‘동일본을 응원하자’ 등, 집단의 힘과 협력을 강조하는 선전이 쏟아졌다. 끊임없이 단결을 강조했고, 지진재해가 일어난지 1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동북 지방에 대한 TV프로그램은 협력과 인연, 맺어짐만을 강조하는 대단히 감정적이고 단편적인 형태를 띤다. 물론 그들의 고통에 감정적인 동조를 보이고, 공감하고 해결을 위해 단합하는 건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지진재해의 본질이 이런 선전들로 인해 가려졌다는 데에 있다. 핵 발전의 안전성과 효율에 대한 본질적 의문, 정부의 대처 방식과 재정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채 감정적으로 동북지방을 구해야 한다는 공허한 외침만이 가득한 것이다. 결국 동북지방의 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보다 국민의 집단적 역할이 강조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부에 대해 확실한 책임 추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은 갈 길을 찾을 수 없고,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말, ‘국가에 위협이 되는 정보를 유포하는 자’에게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는 “비밀보전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사건과 관련해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고, 특히 최근 제기되고 있는 “4년 내 대지진설” 등은 안 그래도 방사능 때문에 불안한 일본 국민들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르크스 주의 이론가인 탈하이머나 바이다에 따르면, 자본과 노동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기성의 정치판을 갈아엎는 제 3의 세력이 등장하는데, 그 실례가 파시즘이다. 11 여기서 말하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일본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정부와 시민” 혹은 “자민당과 민주당” “원전 찬성파/반대파”로 치환한다면, 기성의 정치판을 갈아엎는 제 3의 세력은 하시모토 시장이 소속하는 “오사카 유신회”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오사카 유신회의 인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위에서 야마구치 교수나 나카야마 교수가 지적했듯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다. 50년 넘게 여당으로서 일본을 지배해오던 자민당이 투표로 물러가고, 민주당으로 교체되었지만 사실상 일본 사회가 변화된 부분은 없다. 적어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원전 사고에 관해, 민주당 내각의 무능함이 드러나고, 재정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됨에 따라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은 계속 커져만 갔다. 문제는, 두 거대 정당인 자민당이나 민주당을 대체할만한 세력이 일본 정치판에 딱히 없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 생태계와도 비슷한데, 두 거대 정당이 버티고 있는 이상 다른 야당들의 힘은 미미해질 수밖에 없고, 국민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두 정당은 항상 다수석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오사카 유신회와 하시모토 지사가 등장한 것이다.
하시모토는 보수 우파였지만, 관료기구와 관련된 그의 정책은 대단히 개혁적 (그리고 급진적)이었다. 이 글의 첫 문단에서도 말했듯, 그는 정보 공개실을 설치하고 공무원의 규모를 크게 줄였으며, 공무원 임금도 큰 폭으로 깎았다. 정보 공개실을 설치함으로 인해 오사카의 정보 투명도는 하위권에서 한번에 최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공무원은 절반을 해고하거나 민영화할 방침임을 밝혔으며, 공무원 임금도 30% 이상 삭감될 예정이다. (버스 기사들의 임금은 이미 큰폭으로 삭감되었다) 이는 현 민주당 일본 정부와는 전혀 반대되는데, 앞서 한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정부는 지진재해가 발생한 이후 정보 통제를 지속적으로 시도했으며, 재정 상태 악화에 대한 뾰족한 방책을 아직까지도 내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정부 하나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한 국가 전체를 다루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만, 정보에 대한 투명성, 결단력, 행동력에서 하시모토는 민주당 정권을 압도한다. 게다가 그에게는 청렴이라는 이미지까지 덧붙여져 있다. 기성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에게 있어 하시모토가 매력적인 이유다.
오사카유신회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다시 보자.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국가와 집단의 가치를 강조하는 정책들을 하나하나 쏟아내고 있다. 그 일련의 정책의 성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이 기미가요 기립제창 조례이다. 그들은 강력한 규제와 통제를 이용하여 불확실성과 불안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문제는, 그런 식의 통제는 반 헌법적/ 반 인권적인 시대적 역행인데다가 시민들의 불안의 본질적 부분을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 우파의 권력 기반은 ‘불안’이다. 이는 일본, 한국, 미국,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적’을 창출해냄으로서 권력기반을 유지하고,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데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1930년대에 히틀러는 독일인들이 유대인들과 집시들을 두려워하도록 유도했다. 미국에서는 한동안 소련이 그 역할을 맡았고, 2000년대에 들어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국가들이 미국의 적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줄곧 북한 (그리고 “공산주의” 이념)이 그 역할을 해왔다. “빨갱이”라고 말하면 인권 유린이 정당화되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고 말하면 반인권적 행위가 서슴없이 이루어져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일본에서 그 ‘적’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국가 안정성과 아이들의 교육을 위협하는, 애국심 없는 공무원”이다.
오사카 유신회의 이런 프레임 설정은 꽤 성공적이다. 하시모토의 기미가요 기립 조례나 문신 금지 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다. “그들은 우리들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무원이자,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다. 기미가요를 제창하지 않는다는 반국가적 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함으로서 국가를 불안하게 한다”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부정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면 통제하는 게 맞다”는 식이다. 여기에 헌법에서 보장된 사상/양심의 자유나, 신체의 자유와 같은, 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에 대한 고찰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이런 일련의 논리에서 교사로 대표되는 개인은 국가와 집단의 거대 가치와 질서를 훼손시키지 않을 의무를 지닌 존재로 평가절하되어버린다. “교사가 세금을 먹는 이상 국가를 제창하는 것은 당연하다!” 헌법에서 보장되는 여러 자유들은, 일본 사회에서는 꽤나 먼 얘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3.
오사카 유신회에 대한 지지는, 3.11 지진재해 이후 나타나는 파시즘의 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전체주의화 경향은 다른 부분에서도 관찰된다. 2012년 3월 11일, 그러니까 지진재해가 일어난지 딱 1년이 되던 일요일에, 일본 트위터에선 대단히 희한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웃기는 내용의 트윗을 올리던 사람들에 대해, 일부에서 “불근신 (不謹慎)이다”라는 비난이 나온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이 날에 어떻게 그런 경박한 트윗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3월 11일이 생일인데 친구로부터 “이런 날에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불근신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이 날 태어난 것도 죄냐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개인의 자유나 권리에 대한 의식이 대단히 빈약한 일본 사회는, 그만큼 전체주의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는 세계 2차 대전 전의 “멸사봉공 (滅私捧公)”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개인을 희생하여 사회에 바친다는 이런 이데올로기는 전후의 따라잡기 정책에서도 기업에 모든 걸 희생하며, 심지어 과로로 죽어가면서까지 일을 했던 비극적인 현상을 불러오기도 했으며, 12 집단에 더 이상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거나 잘 맞지 않는 개인을 철저히 잘라내버리는 이지메 현상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게다가 인권이라는 가치에 대한 고찰이나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개인의 가치와 책임’을 다뤘던 전후의 교육 기본법을, 일본 전교조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치부해버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반동이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까지의 관리교육 강화로 나타났고, 90년대 이후의 이지메와 학급 붕괴를 낳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13 불근신 해프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렇게 생각하니 모두가 이렇게 생각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건 모두에게 이익이다”라는 오만한 착각이,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집단의 폭력이다.
한국이 총칼을 든 정부에 의해 ‘강제로’ 사상을 억압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일본은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사상을 통제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앞서 말한 ‘멸사봉공’이 그 예다. 전후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패전국 일본은 미국에게 많은 간섭을 받았고, 이에 따른 피해의식이 없지 않다. 국가를 재건하고, 빠른 경제 성장을 일구는 가운데 국민들은 ‘선진국 일본 국민’으로서의 가치관을 내면화했다. 그리고 일본이 그토록 빠른 성장을 이룬 이유는, 다름아닌 일본인의 ‘높은 단결력’, ‘높은 충성도’, ‘높은 근면성’ 등이라고 (사실이 어떻든간에) 믿게 되었고, 이런 ‘미덕’이 현대 일본 사회의 집단주의를 강화한 듯하다. 미국의 개인주의 사상이 보다 늦게, 얕게 들어오게 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겠는가. 결국 개인을 억압하게 된 주체는 한국의 국가보안법 같은 인위적인 수단이 아닌,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이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집단(국가)의 공 (公)이 국민 개개인을 위한 공공 (公共)과 일치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국가 혹은 집단의 이익과 개개인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집단을 위한 노력이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공리를 위해 희생되는 개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생각해보면 썩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우, 즉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 즉 사상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경우, 집단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과는 더더욱 괴리되고, 개인이 감수해야 할 희생은 더욱 더 커진다. 이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고, 분명히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의 이런 경향 –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필연으로 보는 경향 – 은 점차 증대하고 있다. 나는, 심지어 개인의 감정까지 집단의 힘으로 제약하려고까지 하는 이런 경향이 대단히 두렵다.
3.
앞서 말했듯, 3.11 지진 이후 일본의 TV에는 ‘힘내자, 일본’ ‘우리는 할 수 있다’ ‘동일본을 응원하자’ 등, 집단의 힘과 협력을 강조하는 선전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것들은 국민의 시선이 사건의 본질을 향하지 못하게 주위를 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정부는 “비밀보전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사건과 관련해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고, 특히 최근 제기되고 있는 “4년 내 대지진설” 등은 안 그래도 방사능 때문에 불안한 일본 국민들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개인의 가치보다는 국가와 전체 집단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유능한’ 지도자에 복종하는 것으로 개인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파시즘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지난 2008년 경제 위기때 유럽에서 갑자기 파시즘이 인기를 얻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일본에서의 파시즘은 심상치 않다. 2월 28일, 자민당은 헌법개정원안을 작성하고 이를 발표했는데, 이에는 천황을 ‘원수’로 하고, ‘자위군을 창설’하고, 수상에게 ‘긴급사태’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등, 보다 권위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14. 지금 일본은 마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체주의 국가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 대단히 강하다. 무서울 정도다.
인권보다 국가의 가치가 우선하고, 집단을 위해 개인의 가치가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게 되는 순간, 군국주의의 망령은 되살아날 것이고 재앙은 반복될 것이다. 하시모토는 이러한 부정적 변화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개인의 권리, 개인의 가치, 자유와 인권, 국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것. 불안에 휩싸인 일본 국민들이 전체주의의 마약으로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국가보다 우선하는 가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그리고 자각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들이 언제 하시모토와 오사카 유신회가 지닌 큰 문제와 자신들이 포기해왔던 것을 권리들을 발견하고 되찾는지, 나는 더 지켜볼 생각이다.
매춘에 대한 찬반이나 여성 인권 문제 등, 우리 사회에는 온갖 “성”에 관한 쟁점이 끊이질 않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건 “동성애”와 관한 문제다.
사실 동성애를 허용해야 하냐, 막아야 하냐에 대한 논쟁은 전혀 무의미하다. 동성애는 허용하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밥을 먹고 숨을 쉴 권리를 남이 부여해주지 않듯, 동성애를 할 권리는 누구로부터 인정받는 게 아니다. 동성애, 동성간의 사랑에 왜 타인의 허락이 필요한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권리를 감히 누가 제한할 수 있겠는가. 사실은 동성애 허용의 당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그리 생산적인 일은 아니다. 동성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만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제한할만한 대단한 논리적이자 합리적인 근거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겠는가. 애초에 굳이 논할 가치가 없는, 자명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1.
지난 1월에 공포된 곽노현 교육감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 때문은 ‘동성애’라는 이슈를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고, 동성애 혐오자, 즉 호모포비아들이 동성애에 대해 도대체 어떤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먼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들어가 있는 조항들을 살펴보자.
제 2장 학생의 인권 제 1절 차별받지 않을 권리 제 6조(차별받지않을권리) ①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제 4절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정보의 권리 제 13조(사생활의 자유 및 사생활의 보호를 받을 권리) ① 학생은 사생활의 자유 및 가족, 교우관계, 성적, 병력, 징계기록, 교육비 미납사실, 성적지향ㆍ성정체성 등의 개인 정보(이하 “개인 정보”라 한다)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 10절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 제 28조(소수자학생의권리보장) ①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빈곤 학생, 장애 학생, 한부모가정 학생, 다문화가정 학생, 외국인 학생, 운동선수, 성소수자, 근로 학생 등 소수자 학생(이하 “소수자 학생”이라 한다)이 그 특성에 따라 요청되는 권리를 적정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④ 교육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특히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관한 정보를 본인의 동의없이 보호자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아니되며, 학생의 안전상 긴급성을 요하는 경우에도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한다.
이상이 “성적 지향”과 관련된 부분을 다룬 부분들인데, 솔직히 말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제 2장 제 1절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문화한다. 이에는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이 포함되고, 학생은 이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제 4절에서는 성적지향, 성정체성의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갖고, 제 10절에선 성소수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것과 요청되는 권리를 적정하게 보장할 것을 명기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고, 비밀을 보장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어떤 인간에게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주어진다. 위의 조항들은 이런 당연한 사실들을 글로 옮겨놓은, 지극히 건전한 조문들 뿐이다. 이에 대체 어떤 정치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체 어떤 ‘이념’이 들어가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 적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권리뿐이다. 이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와 다름 없지 않겠는가.
중앙일보는 지난 10월 20일, “학생인권조례에 ‘동성애’ 끼워 넣은 교육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1첫 문단은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자문위원회가 ‘동성애(同性愛)’를 허용하는 조항을 조례안에 포함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제목부터 묘한 느낌을 풍긴다. 첫 문단의 첫 문장도 이상하다. 동성애를 ‘허용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처음에도 말했듯 동성애는 누가 허용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는 마치 원래 동성애가 금지되어 있었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학생인권조례의, 성적 지향 부분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가장 황당하고 재미있는, 그리고 주가 되는 이유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는 학생들의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몇 가지 이유로 재미있는데, 첫째가 ‘차별 금지’가 ‘동성애 조장’으로 연결되는 황당한 귀결이고, 둘째는 ‘동성애’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정적인 가치판단이다.
첫번째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갑자기 동성애자가 되겠나. 그건 처음부터 양성애자였거나 혹은 동성애자였지만 이성애자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고 왔던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건 나쁘기는 커녕 대단히 긍정적인 일이다! 당신이, 오직 주변의 시선과 평가 때문에 조금도 사랑을 느끼지 않는 상대들만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해보아라. 이는 불행일 뿐이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길이고, 이는 동성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근거없는, 그리고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대우를 받던 동성애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단연코 아무도 없다.
두번째,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가치판단’인데, 사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동성애 자체의 속성과는 무관하다. 실제로, 중세시대에는 공공연히 동성애가 행해지기도 했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가치판단이 어디까지나 사회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현대에 쌓아 올려진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판단에는, 종교적인 배경과 생물학적인 배경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
2.
동성애를 금지하는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이다. 성경, 특히 구약에는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명기되어 있고, 여러 부분에서 동성애나 남색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하나님 (하느님)이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했고, 이는 성경에 나와 있으며, 따라서 동성애는 금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의 문제다. 구약에서 몇 번 나오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으로 가면 대단히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심지어는, 성경 텍스트를 토대로 예수가 남성과 성적 관계를 맺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애초에, 세상의 옳고 그름을 성경으로 가린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 성경에 나오는 규범들을 다 따르려면,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가 대단히 힘들 것이며, 현대의 법률조차 어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돼지고기를 안 먹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는 기독교인이 있던가?) 성경에 나온 다른 규범들은 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유독 동성애에 관한 부분만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게다가, 어디까지나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영역 안에만 존재하는 성경 속의 규범을, 대체 왜 모든 세상 사람들이 강요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를 잣대질하려는 행위는, 대단히 오만하다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동성애는 생식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데, 인간에게 있어서 섹스는 생식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섹스는 인간과 인간이 가장 친밀한 형태로 감정을 공유하는 행위이자, ‘성욕’을 해소하고 쾌락을 맛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심지어 다른 동물조차 스트레스 해소 등을 목적으로 동성애를 하는 가운데, 섹스의 생식 기능만 강조하여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동성애를 비난한다면, 수녀들이나 신부들, 혹은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도 다같이 비난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동성애가 에이즈의 주 전염로라는 것도 이미 철이 지난, 하지만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이용되는 논거다. 동성애를 하든 이성애를 하든 HIV 보균자와 (적절한 안전장치가 없는) 성적 접촉을 하면, HIV 바이러스는 전염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에이즈가 전염되었다면, 그것은 섹스의 문제이지, 동성애의 문제는 아니다.
동성애의 부정적 가치판단은 이런 배경들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성애의 반대 이유로 ‘음란하다’ ‘퇴폐적이다’ 라는 점을 드는 경우가 꽤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동성애가 양지로 나오게 되면 (음란한) 동성애를 하게 된 학생들이 ‘타락할 것’이라는 거다. 그치만 이 또한, 당연하게도 근거는 없다. 이성간에도 이른바 ‘음란하고 퇴폐적인’ 성행위를 하는 경우는 셀 수가 없다. 또한, 동성애자가 항문 성교를 한다고 해서 그게 더럽거나 음란한 것은 아니다. 이성간에도 항문 성교를 하는데, 그것도 금지해야 한다고 하려나. 추가로, 동성애가 음지에서 음란한 성행위를 하는 퇴폐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데에는, 동성애를 금기시하고 내쫓으려 했던, 기독교를 비롯한 사회의 책임도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3.
학생인권조례의 성적 지향 부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너무나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솔직히 충격적이다. ‘호모포비아’라는, 반인륜적이고 비인간적인 태도를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아무 문제 의식 없이 떠벌이고 다닌다. 그리고 주변의 공감을 산다. 인간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게 당연한 사회, 그게 지금의 한국 사회다.
이런 발상이 무서운 건, 그게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동성애 혐오는 동성애자들에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준다. 인간의 가치에 차이가 있음을 규정하려는, 너무나도 당당한 호모포비아들을 보면 한때 열등한 민족은 지구에서 청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학살했던 옛 독일의 나치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호모포비아들이 동성애자들에게 갖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유태인들은 차별당해 마땅한, 열등한 존재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는 가장 비참하고 잔인한 시기를 맞았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대에서 ‘반 동성애’를 의미하는 ‘졸업작품’이 문제가 되었다. 서울대 동성애자 동아리 QIS는 ‘레즈가 어때서?’ ‘게이가 어때서?’라는 포스터를 게시판에 붙였는데, 여기에 ‘How could your life be created?’ 라는 문구와 함께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의미하는 이미지의 스탬프를 서울대 미대 학생이 찍어놓고서, 이를 <이성애 권장-반동성애 캠페인>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한 것이다. 2 기독교인이었던 해당 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선의’라고 주장했지만, 그 학생이 어떻게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했던간에, 그것은 명백한 사회적 ‘해악’이다. 그 학생은 자신의 편협하고 짧은, 대단히 미성숙한 유아적 판단으로 타인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짓밟는 행위를 해버린 것이다. ‘우수 혈통만을 남기기 위해서’라는 ‘선의’로 유태인 학살을 자행했던 나치스 독일과 저 학생이 과연 다를 게 있을까.
UN에서는 지난해 여름, ‘동성애 차별금지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또한 반기문 의장은 지속적으로 각국에 동성애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을 만들 것을 촉구해왔으며, 지난 12월 8일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도덕적 폭력이고 중대한 인권침해이며 공중보건의 위기”이며, “국제인권법에 따라, 모든 국가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것을 포함하여 폭력과 차별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32011년 11월에 나온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에 관한 유엔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을 근거로 일어나는 모든 종류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예방,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4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성 소수자의 인권 옹호를 위해 미국이 앞장서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5미국 오하마 주에서는 오늘 (2012년 3월 28일)부터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게 하는 조례가 발효되었다. 6
세계는 인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차별을 철폐하는 쪽으로, 인간과 인간을 더욱 평등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는 이미 역사속에서 대단히 비싼 값을 치러가며 학습했다. 타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차별을 제멋대로 합리화한다면 어떤 참혹한 결과가 발생하는가. 그리고 차별과 폭력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어떠한 최후를 맞는가. 한국의 호모포비아들은, 특히 박애주의를 실천해야 할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이런 간단한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4.
마지막으로, 다시 학생인권조례로 돌아가보자. 학생인권조례의 성적 지향 부분이 맘에 안 든다면, 먼저 당신과 동성애자들은 똑같은 인간이며,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그리고, 인간으로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 불합리한 이유로 타인의 행복을 제한하고 탄압할 것인가, 혹은 그들의 권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인가 – 를 먼저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다른 인간의 권리를 자신의 권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과연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할 권리를 그렇게 쉽게,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동성애자들의 권리에 대한 존중은 곧 당신 자신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며, 당신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다. 동성애자는 결코 남이 아니다. 바로 당신이고, 우리들 모두이다.
이런 면에서,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가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이를 통해 추악하고 저질스러운,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차별들이 이 땅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 그리고 평생 머릿속에 심어줘야 할 것은 ‘차별’과 ‘혐오’가 아닌, ‘공존’과 ‘존중’이다.
2004년에 서비스를 시작하여, 한때 블로고스피어의 중심에 자리했던, 그리고 SNS의 대두와 더불어 지금은 잊혀지다시피 한 올블로그가, 내일 이후 위드블로그(Withblog.net)과 통합된다. 사실상 서비스 종료 선언이다.
바쁜 일상과 트위터의 매력으로 인해 이전에 운영하던 블로그를 접기까지, 나는 올블로그에 꽤나 많은 신세를 졌었다. 올블로그를 통한 방문자 유입은, 지인과의 교류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운영되던 나의 블로그를, 공공의 장에 끌어당겨놓았다. 블로깅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그 즈음이었을 거다. 네이버 블로그를 접고, 태터툴즈에서, 또 티스토리로. 트래픽 문제 때문에 티스토리로 옮긴 것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메인이란 걸 구입해본 것도 올블로그 덕분이었다. 내가 올블로그에 느꼈던 애정은 각별했다. 과거 아카이브를 보면 올블로그에 대해 쓴 글이 한두 개가 아니다.
블로고스피어는 치열했다. 지금 트위터가 그런 것처럼, 블로고스피어에선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유독 기억에 남는 건 “RSS 전체공개의 당위성” 논란, 그리고 “대가성 리뷰 블로그” 논란. 끊임없이 트랙백과 댓글이 오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 2009년 즈음이었을까 – 올블로그에서 그런 치열한 토론을 보기는 힘들어졌다. 3월 3일 현재 올블로그 메인은 처참하다. 올블로그에서 글을 찾아 읽고, 추천 버튼을 누르는 능동적 유저가 아직도 남아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올블로그가 2009년 말에 내놓았던 서비스, Ruby는 작년에 종료되었고, 3월 5일을 기해 올블로그 그 자체도 블로그칵테일의 다른 서비스인 위드블로그와 합쳐지게 되었다.
트위터를 시작으로 SNS가 널리 퍼지게 된 이후,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은 건, 그리고 그 하락세가 뚜렷한 것은 텍스트큐브나 워드프레스 기반 독립형 블로그를 운영하던 층이다. 사람들은, 글을 쓰고 타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데 있어 블로그보다 부담이 훨씬 덜하고 편리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둥지를 틀었다. 한때 매년 Top 100 블로거 행사를 개최할 정도로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던 올블로그가 이렇게 썰렁해지게 된 건 SNS의 영향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많이 추천받은 글 항목이나, 인기 태그 항목을 보면 대충 현재 상황이 보인다.
하지만, SNS가 올블로그가 실패한 모든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SNS의 등장으로 블로고스피어가 다소 위축되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블로고스피어가 죽은 것도 아니다. 비록 올블로그와 방향이 상당히 다르긴 하나, 위드블로그는 그런대로 능동적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메타사이트인 믹시는 여전히 나쁘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 티스토리에도, 다소 더디기는 하나 인기 블로거를 중심으로 꾸준히 글이 올라오고 있고, 특히 이글루스는 예나 지금이나 북적인다. 올블로그가 실패한 원인이 블로고스피어에 있다기보다는, 올블로그 자체에 있다는 소리다.
사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되어 있었다. 올블로그에 부족한 부분, 반드시 개선하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항상 눈에 보였다. 첫째로, 올블로그에는 이글루스와 같은 커뮤니티성이 없었다. 둘째, 분야의 다양성도 없었다. 올블로그 메인은 IT관련 글 일색이었다. 셋째, 인기 블로거에게 트래픽이 집중되는 구조였다. 넷째, 과거에 올라왔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간 좋은 글을 발굴해낼 수 있는 시스템도 없었다. 그리고 다섯째, 올블로그에는 변화의 의지가 없었고, 이용자들의 비판을 수용하여 올블로그 운영에 반영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다. 웹 생태계 변화에 따른 위기감이나, 열정 혹은 유저에 대한 애착을, 적어도 나로서는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사실 올블로그에는 이렇다 할 혁신이 없었다.
올블로그 V2. 약 4-5년 전.
이글루스에는 커뮤니티성이 있다. 이글루스의 유저들은 이글루스라는 거대한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서 또 여러 부분으로 갈라져 소통한다. IT, 정치부터 자동차와 장난감까지, 다양한 주제로 갈라진 밸리가 있고, 가든이 있다. 또 그 안엔 조밀하게 갖춰진 랭킹 시스템이 있다. 마이리더를 통해 자신 주변의 블로거들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눈에 보고, 관리한다. 이글루스측은, “이글루스”라는 거대한 공간을 블로거들에게 놀이터로 제공하고 있다. 그 안에서 유저들은 치고받고 떠든다. 한창 논쟁 중인 사안에 대해선 트랙백 수십 개, 댓글 수백 개가 달린다. 그 자체가 일종의 중독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글루스를 켜놓고 이 밸리 저 밸리 돌아다니며, 이오공감부터 방금 올라온 글을 읽는 것, 거기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올블로그에도 예전엔 이런 재미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건조해졌다. 맛이 없어졌다. RSS리더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전에, 유저가 한 마디 글을 남기고 갈 수 있는 공간이 메인에 있었고 이게 꽤 재미있게 운영된 적이 있는데, 우측 상단에 광고 배너를 달면서 이 공간을 잘 노출되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감소했고, 결국 그 공간은 사라졌다.) 또한, 커뮤니티성이든 뭐든, 상시 유저들을 올블로그에 붙잡아두고 글을 읽고 소통을 하게 하는 것은, 올블로그 자체를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유저의 ‘적극적인 참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중요했는데, 올블로그는 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줄어든 (그리고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글을 걸러내고 노출시켜줄 별다른 자동화된 기술적 장치를 갖춰놓은 것도 아니었다. 위와 아래의 올블로그 스크린샷을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유저의 참가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와 안 이루어지는 경우의 올블로그 메인의 질은 대단히 확연한 차이가 나게 된다.
다양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물론 올블로그에 가입을 하며 블로깅을 할 정도의 유저층이, IT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올블로그에는, 그게 전부였다는 거다. 가장 많이 추천받은 글은 정치 아니면 IT였고, 메인에 노출되는 인기태그 세 개가 전부 IT 아니면 정치 관련 태그인 경우도 꽤나 흔했다. 요리나 교육, 게임, TV, 도서에 관한 글이 크게 주목받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올블로그에는 그런 ‘(올블 기준으로)마이너한’ 분야들을 따로 묶어서, 그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노출시켜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건 태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태그는 어디까지나 블로거 개인에 의존하는 것인데다가, 구체적인 블로고스피어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시스템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저들에게 다양한 분야를 스스로 찾아 읽고, 추천함으로써 글을 발굴하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따라서 메타 사이트에는 어떤 분야의 글들을 하나로 모으는 시스템이 필수적이었다. 올블로그는 ‘채널’이라는 장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올블로그는 이를 끝내 활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올블로그측이 “올블로그 인기글의 주제 다양성 확보”를 목적으로 채널을 만들었다고 스스로 말했음에도 말이다. 1. 2007년 11월에 채널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는데, 2009년 3월의 시점에 단 네 가지 카테고리, “정치, 직장인, 영화, 코엑스”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건 올블로그가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그냥 방치해놓은 것으로밖엔 볼 수 없다.(직장인은 그렇다치고 코엑스는 도대체 뭔가?) 같은 종류의 블로그 메타 사이트인 믹시는, 피드받은 글을 분석해 글의 주제를 자동적으로 분류해주고, 이를 비슷한 비중으로 노출시켜준다. 올블에도 이런 게 필요했다는 소리다.
Ruby라는 서비스가 나오면서 글의 다양성과 커뮤니티성 부족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다. 그런데 2년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Ruby는 그리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첫번째 요인은 루비에 글을 따로 등록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두번째 요인은 루비와 올블로그 메인의 괴리다. 올블로그 메인과 루비는 연동되어 있지 않은, “별개의” 서비스였다. 이건 블로그카페가 갖고 있던 문제와 같은데, 루비에 접근하려면 메인에서 루비로 가는 링크를 클릭해야 했다. 메인과 루비에 노출되는 글의 추천이나, 테마별 글 표시를 연동하려는 어떤 시도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루비에 글을 등록하려면, 올블로그에 글을 싱크한 후, 루비에 가서 테마별로 글을 다시 등록해야 했다. 누가 이런 귀찮음을 감수하겠는가? 글 자동 분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루비를 올블로그 메인에 전면적으로 내세워서 크게 개편을 했다면 어땠겠는가. 아직까지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루비, 블로그카페, 채널, 등등. 아이디어는 좋았다. 제대로 활용했다면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던 이 장치들은 그리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했고, 나는 이를 전적으로 운영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저 시스템들을 개선하고, 활용할 방안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되었어야 하는데 올블로그는 과연 그를 위한 노력을 했는가?
지금의 올블로그를 보니 씁쓸하다. 좀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좀 더 큰 변화를 구상해볼 수 있었을 텐데. 한국의 블로고스피어에서, 독립된 메타 블로그 사이트라고 부를 만한 곳은 이제 믹시 정도밖에 없다. 다음 뷰나 위드블로그 같은 곳이 있긴 하지만 방향이 매우 다르다. SNS에 밀려 독립 블로그들이 약해져가는 과정 속에서, 올블로그는 블로고스피어를 공고히 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최근, “용서”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 메카니즘에 대해 고찰할 기회가 있었다. 해당 강의는 나치 독일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와 이에 대한 용서, 그리고 그 조건과 의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내 머릿속에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한국의, 독재정권이 지배했던 시절의 우울한 근현대사였다.
독일의 정치 이론가였던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행위 (activity)를 세 가지로 구분했는데, 그 중 “인간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란 뜻으로 행동 (action) 이라는 분류를 두었다. 그녀는, 행동에는 예견불가능성unpredictability과 불가역성inreversibility이 있다고 말한다. 불가역성이란, 이미 이뤄진 인간간의 행위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성질을 말한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인간 행위의 불가역성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용서”라고 말한다. 용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행위는 보복의 연쇄를 낳고, 이 연쇄에 개입하여 더 이상의 연쇄를 막는 것이 “용서”, 혹은 그 대체물이라 볼 수 있는 “처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떠할 경우에 인간은 타자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할까. 프랑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철학 교수가 되었다가, 세계 2차 대전이 터지자 레지스탕스가 되었던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는 그의 1971년 저작에서, “용서!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용서를 구걸한 적이 있는가?”라고 말한다. 독일은 1990년대가 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나치의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를 한 적이 없기에, 이런 맥락의 발언이 나왔던 것이다. 그는 그의 글을 통해 “죄인의, 비탄과 자포자기의 상태야말로, 용서에 대해 그 의미와 존재이유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한다. 장켈레비치가 말한대로 생각해본다면, 죄인이 스스로의 죄를 인지하고, 이에 대해 죄악감을 느끼며 참회하는 것이 용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이제 한국의 근현대사에 이 논리를 대입해볼 차례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일제강점을 시작으로 독재정권들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비참히 뒤틀리고, 일그러진 비탄의 역사다. 문제는 아직도 과거의 문제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 지금의 사람들을 여전히 괴롭게 하고 있다는 점이고, 끊임없이 과거에 연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행동action이, 용서나 처벌이라는 도구에 의해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죽었고, 전두환은 철저한 경호를 받으며, 애초에 한국의 법률은 사적 제재를 금하고 있다. 니체는, 해소되지 않는 복수심은 원한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걸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용서 혹은 처벌인데, 문제는 그들이 한 번도 그들의 죄에 대해 반성한 적도 없고, 용서를 구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합당한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전두환은 추징금조차 물지 않은 채로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이승만은 미국으로 도망쳤었고, 박정희는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오랜 기간에 걸친, 그들에 대한 깊은 원한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이상 해소될 수 없다.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조금 다른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박근혜의 문제가 보인다. 엄연히 따져 말하자면, 그는 그의 아버지 박정희와 같이 대량 학살을 일으킨 범죄자는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박정희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녀가 그의 아버지의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박정희와 그의 희생자들간의, 즉 당사자들간의 용서가 아닌, 제 3자들끼리의 용서가 되어버린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박정희를 대신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히 박정희의 거대한 후광을 등에 업고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며, 국민들의 피로 물든 그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박정희의 죄의 잔재가 아직까지 박근혜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원한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은, 희생자의 유족들과 그의 후손들에 대한 박근혜 본인의 진심어린 뉘우침과 용서의 구걸뿐이고, 그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그녀도, 그녀의 후손도 그리고 한국의 역사도 결코 박정희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전두환으로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용서를 요구하는데도, 그는 반성하지 않으며 당연히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얼마 전 손바닥TV 이상호 기자가 전두환에게 사죄를 요구하다가 긴급연행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오히려 국가가 용서를 위한 일련의 과정을 막아버리는, “용서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가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의 용서 – 당사자들간의 용서 – 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용서받지 않는 것,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다.
고 김근태 상임고문-이근안의 문제는 조금 다른 경우다. 그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며 영화 밀양을 떠올렸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옥중에서 김근태에게 용서를 구했고, 김근태는 반신반의하며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를 용서했다. 정상적인 용서의 과정이었다면, 여기서 이근안의 행동은 종결되고, 그 연쇄는 멈춰졌어야 했다. 근데 7년간의 복역 후 그는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사실 목사가 되었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문제삼고 싶지 않다. 기독교 교리를 따르자면,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예수의 희생을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 이근안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면 그는 목사가 될 자격이 있었다. 이근안에겐, 비록 그에게 과분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목사가 된 다음이었다. 그는 설교와 인터뷰에서, 과거의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으며, 고 김근태 고문을 비롯한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말조차 서슴치 않았다. 고 김근태 고문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국민들은 분노했고, 교계는 그의 목사 자격을 박탈했다. 용서는 받았으되, 진정으로 반성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의 행동에 대한 새로운 연쇄와 원한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목사가 됨에 따라 신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은, 가해자-피해자의 관계에 있어서 엄연한 제 3자다. 그가 최우선으로 생각했어야 하는 것은 신의 용서가 아니라 그의 피해자의 용서였어야 했다. 그는 그걸 몰랐고,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몰락했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서의 전제조건이 결여거나 무효화되었을 경우, 혹은 가해자에게 속아서 용서를 했을 경우, 용서를 철회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이는 “용서는 조건적인가, 무조건적인가”라는, 용서에 대한 보다 본질적 의문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분명히 죄를 지은 사람이 있고 이로 인한 피해를 본 사람이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반성-용서는 너무나도 찾기 힘들다. 일본에 의한 지배로 인한 위안부/민간인 학살 문제, 독재 정권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 문제 등. 이 문제들에 대한 용서와 청산의 과정은 없고 원한만 쌓아가는 게 한국의 근현대사이고, 이는, 언젠가 우리가 그 댓가를 짊어져야 할 우리들 역사와 사회의 비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 약자인 여성들이 예민해하는 것은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성희롱 할 생각은 없었고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발언하겠지만 해명이나 사과는 아니다.”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하게끔 만드는 이 말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1 놀라진 않았다. 다만 절망했고, 화가 났다.
사실 이 일은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어준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벌어진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보아둘 필요가 있다. 나꼼수의 PD인 김용민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인물과 사상’ 12월호에 실린 김용민의 인터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홍유진 : 콘서트에는 젊은 분들이 많이 왔나요?
김용민 :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팬 사인회 때 보니까 20~30대 여성이 가장 많더군요. 이제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거죠. 정치가 남성의 영역이고, 또 재미없고 굉장히 복잡할 줄 알았는데 나꼼수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진 겁니다. 정치도 사실 알고 보면 생활의 영역이고,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한마디로 만만해진 거죠. 이 생활의 스트레스가 결국 정치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면서 비로소 행동하게 된 거죠. 아주 좋은 흐름이라고 봐요. 이 거대한 물결을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젊은 여성은 정치에 무지했고, 관심도 없었지만, 나꼼수가 그들을 “구원”했다는, 남성으로서의, 그리고 나꼼수팀으로서의 짙은 우월감과 오만이 묻어나오는 인터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나꼼수에서 일어났던 사건도 이 맥락과 일치한다. 김용민은 21일, 나꼼수에서 “정 전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2 이 발언은 한 여성이 자신의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는 문구를 쓰고 정봉주 석방운동 홈페이지에 올린 이후 나온 발언이었는데, 김용민으로선 웃기라고 한 발언일지 모르겠으나, 이는 마치 정봉주를 위해 여성들이 (성적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발언은, 한편으로는 정봉주의 석방을 위해 순수하게 자신의 몸으로 의사를 표현한 여성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그 여성들이 과연 정봉주의 성욕 해소를 위해 비키니를 입고 가슴을 드러내고 사진을 찍었을까? 그 발언의 의도가 어땠든간에, 이는 대단히 성차별적인 발언이고, 마초적인 발언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나꼼수측은 이 건에 대해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아왔다. 하지만, 위에서도 썼듯, 김어준은 오늘자(2월 2일)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예민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따라서 해명과 사과를 할 뜻도 없음을 밝혔다.
그들은 지금까지 진보를 자처하며 이명박과 여당을 비난해왔다. 그런데 진보의 논리를 외쳐온 그들이, 이번엔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아니, 너무나도 구태의연하고 역겨운 발언을 한 것이다. 진보가 무엇인가? 공고히 쌓아 올려진 기득권의 성벽과 집중된 부를 해체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추구하며, 강자를 위해 희생되는 약자가 없게 하는 것이 진보의 중심적 논리이자 추구해야 할 이상 아닌가? 진보와 마초이즘은 결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율배반이다.
마초이즘은 남성우월논리다. 남성에 비해 여성을 한 단계 낮은 수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여성을 남성에게 봉사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기반으로 삼고, 남여의 사회적 역할은 동일 할 수 없음을 믿는 구시대적, 비인간적 논리다. 이는 인간 간에 계층을 설정하는 논리로, 모든 인간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진보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사상과 충돌한다. 차별과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가득한 마초이즘은,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호모포비아들의 역겹고 철 지난 사상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마초이즘은 죄악이다.
그런데 나꼼수측은 이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는 못할 망정, 사과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이건 그들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구태의연한지를 말해준다. 그들은 평소에 이명박이나 그 주변 인물들의 행동, 특히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해왔다. 그런데 이런 발언을 한 이상, 그리고 그 심각성을 아직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이상 그들이 다른 이들의 도덕을 문제삼는 것이 가능한가?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 제대로 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있다고 욕할 자격이 있는가?
이는 진보를 자처하던 그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사상적 구멍이 뚫려 있었는지 알려주는 사건이다. “차별적 진보”는 모순이다. 적어도, 이제 그들에겐, 진보를 자처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그들은 너무 오만했다. 때문에, 자성할 줄도 몰랐다. 그들은 그들도 MB정권과 똑같은, 감시과 견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제 그 사실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실수에서, 진보는 배워야 한다.
곽노현 교육감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서울시 교육감의 자리로 돌아온 후 결국 공포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아직도 말이 많다. 나는 “왜 이렇게 당연한 게 논란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말이다. 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왜 체벌이 금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내가 트위터에 산발적으로 올렸던 트윗을 정리하고, 보충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권리를 가지고,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든 이것을 보장받을 권리를 지닌다. 이른바 천부인권이다.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 갓 태어난 아기는 물론 연쇄살인범도 인권을 갖고, 보장받을 권리를 지닌다. 체벌의 대상이 되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학생도 인권을 당연히 갖고 있고, 이를 주장할 수 있으며, 보장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체벌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체벌은 학생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모에 의한 가정 폭력이, 자식에게 커다란 정신적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자식으로 하여금 폭력적인 성향을 갖도록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넘칠 정도로 많다. 이런 연구결과가 옳지 않다며 반론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체로 이런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있고, 또 공감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교사에 의한 폭력”이 학생의 폭력성을 재생산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대체 왜일까? 부모에 의한 폭력과 교사에 의한 폭력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자는 말한다. “체벌”은 교육의 수단이며, 따라서 인권침해나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교육의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라면, 정말 학생의 기본적인 신체권을 공공연히 침해하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범죄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든 인간은 체포당하는 순간부터 재판을 받아 투옥되고 형을 집행받는 그 모든 순간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는다. 간수가 “교화를 위해서” 또는 “교육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수형자에게 체벌을 가할 수 있는가? 용의자에게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경찰이나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철저한 규율 안에서, 오직 필요에 따라, 정해진 만큼의 인권을 “제한”한다. 이것은 국민이 국회를 통해, 그리고 헌법을 통해 공권력에 위임한 “권한”이고,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 인류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단 앞서 말했듯이 그들도 함부로 그들의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정해진 바에 따라 엄격하게 인권 제한을 행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권의 제한을 넘어서 “침해”한다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건 이상적인 이야기고, 현실은 다르지만,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교사들을 보자. “체벌”을 통해, 그들은 아주 당연한 듯이 학생들의 인권을 위협한다. 체벌에도 규정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 규정이란 게 구속력이 없는데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있고, 학생들로서도 교사들의 이런 문제를 드러내놓고 지적할 수 있는 어떤 좋은 방법도 없다. 게다가 체벌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다. 같은 수준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체벌의 수준이 다를 수 있고,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강도의 체벌이 가해질 수 있으며 (물론 체벌 자체에 반대하는 내 기준으로보면, 모든 수준의 체벌은 부당하다) 혹은 교사 개인의 착각이나 오해에서 아무 죄 없는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교사들의 체벌의 수위를 개개의 사안에 따라 공적으로 논해서 결정하거나,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전무하다는 데 있다. 즉, 공권력이나 위원회 통한 징계와 같은 “공적 제재”에 반해, 교사들의 체벌은 “사적 제재”의 영역에 속하고, 이런 통제되지 않은 사적 제재는 필연적으로 인권 침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법부조차도 인권을 제약할 땐 강력한 수준의 통제를 받는데, 정작 교사는 아무런 견제나 감시를 받지 않는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면 교사에게는, 학생의 인권을 멋대로 제약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권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금지에 반대하는 가장 큰 근거는 역시 “교권의 추락”일 것이다. 학생을 체벌로 다스리지 못하면 교권은 추락할 것이고, 이는 대한민국 교육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논리다. 그리고 이는 “틀렸다.” 지금까지는 교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교권은 교사의 권위에 대한 학생의 존중심에서 비롯되는 권리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교권은,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을 통해 학생에게 위협을 가함으로써 갖게 되는 “공포”로 만들어진, 일종의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 존경받는 교사라면, 체벌이 없다고 해서 교권이 추락할 리가 없다. 학생들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교권이 추락했다는 주장은, 교사들의 교권이 체벌 없이는 며칠도 유지되지 못할 정도의 “싸구려”에 불과했다는 자기고백과 다름없다. 교사들은 그동안 학생을 “교육”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력 앞에 “복종”시키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벌이 없어지니 그동안 억압받고 있었던 자기 주장과 권위에의 저항을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힘에 의존한 교권이 오래 가면 뭐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이건 어찌 보면 “정상화의 과정”이다. 게다가, 교권 “따위”가, “인권”이라는 거대하고 중대한 권리에 우선할 수 없다는 건 대단히 당연한 일이다.
신입 여교사는 왜 학생들로부터 괴롭힘 받는 존재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이 다른 교사들의 “힘”에 지배받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약한 신입 여교사를 “힘”으로 지배하는 데서 푸는 것이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다. 학급에서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한 자도, 결국은 “교사”에 의해 지배받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교사-학생이라는 피라미드 관계가 이미 존재하는 사회에서 학생-학생이라는 피라미드 관계가 또 생겨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어리석다. 군대 내 폭력의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힘의 권력관계”를 교육하는 것은 중독성 강한 온라인 게임이나 드라마가 아닌, 바로 “교사들”이다. 이런 힘의 관계의 교육은 초등학생 때부터, 심하면 유치원 때부터 이루어진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사들의 체벌이 학생들에게 권력구조와 폭력을 학습해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육의 현장”에서,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도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교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폭력이 폭력을 멈추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 학급 붕괴라는 현상 앞에서 가장 크게 반성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교사들 자신이다. 교사들은 이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체벌 외의 어떤 수단을 써야만 하는가. 혹자는 말한다. “체벌을 성급하게 금지하기 전에,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만들어놨어야만 한다”고. “학생인권 조례는 너무 시급하다”고. 근데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 보장이 주장되기 시작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두발규제 등과 같은 부분에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학생 인권 단체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를 위해 싸워왔으며, 그게 이번 서울시 교육감에 의해 결실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성급한 판단에 의한 정책이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너희들은 지난 수십 년간 대체 뭘 했니?” 이제 와서 체벌을 대체할 방법이 없다고, 인권의 제약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뻔뻔하다. 교사들은 지난 수십 년간 체벌이라는 가장 편한 도구를 손에 쥐고, 다른 대체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을 방기해 왔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한국이다.
그럼 “교육의 수단”에는, 대체 체벌 말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공적 제재”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본다. 교사들이 체벌과 같은 “사적 제재”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학생들을 다룰 수 있는 “공적 제재”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다. 이는 외국의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선진국의 학교들은 체벌이 아닌 “징계”를 이용한다. 즉, 부모를 소환하여 학생과 함께 대면을 한다던가, 근신, 정학, 퇴학이라는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모든 징계는 공적인 문서에 기록되기 때문에 교사가 이 권한을 남용할 수 없고, 또 수위가 높은 징계는 반드시 교사와 학부모 대표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하며, 이는 학생과 학생의 부모와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진 다음에 행해져야 한다. 학생의 잘못에 따라선, 특히 강간이나 살인, 집단에 의한 지속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사법 기관에 맡기는 것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은 누구 특정 개인의 지극히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체벌”과는 달리, 공적이고 공개적이며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공적 제재”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에 필요한 것은 바로 제대로 된 “공적 제재” 시스템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비극은, 공적인 제재의 부재를 사적인 제재로 메꾸려고 했기에 생겨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교사들도 한 편으로는 피해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학생인권조례는 결코 학생들을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방치하자”라는 개념이 아니다. 자유를 보장하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확실하고 엄격한 형태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교복” “두발”과 같은, 지극히 쓸데없고 무의미한 부분, 하지만 눈에 드러나는 부분에 대한 구시대적 제재를 가하는 것을 지나치게 중요시한 바람에, 이를 개인의 자유로 인정하고 허용하고자 하는 학생 인권조례에 대해 학생들을 “방치한다”는 편협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일 테다)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체벌을 하면, 복잡하게 징계에 회부하고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사건을 종결짓고 뒤끝을 없앨 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게 체벌의 핵심적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내가 체벌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벌은, 맞으면 끝난다.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신체권을 일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얻고 죄의식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죄를 지은 학생 입장에선 차라리 이게 편하다. 그런데, 만성적인 학교폭력을 비롯한 모든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서 나온다.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않고, 잘못을 하더라도 몇 대 맞는 것으로 자신의 죗값을 전부 치를 수 있다는 식의 학습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체벌을 한다고 한들 학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체벌은 체벌로 인한 “아픔”이 아닌, “공포”를 통해 타자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만성적인 체벌을 통해 공포를 무감각하게 여기게 된다면, 아무리 체벌을 가해도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타인에게 해소하게 하는, 폭력을 조장하는 수단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잘못에 대해선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게 징계든, 형사처벌이든. 그런데 지금의 체벌은 “처벌”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인권 침해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체벌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대체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그 수많은 문제들은 왜 생겨났단 말인가? 체벌이 제대로 기능했더라면, 누가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갈취했겠냐는 말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군부독재 시절,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체벌이 통했을 것이다. 그런 사회였으니까. 개인보다는 전체의 질서가 우선되고, 개인의 권리의 가치보다는 전체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세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가장 값진 가치이고, 이는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다. 왜 학교는 아직도 70-80년대에 머물러 있으려 하는가? 교사들이 개혁해야 할 대상은 학생들이 아니다. 교사들이 개혁해야 할 것은 이 나라의 교육시스템이며, 학교이며, 그리고 그들 자신이다. 체벌은 금지되어야 하고, 이는 충분한 이유와 당위성을 갖고 있음을 난 믿고, 주장한다.
몇 년 전, 아이패드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잡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쓸모 없어보이는 물건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맥보다 성능도 떨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주 작은 것도 아니고, 아이폰보다 크면서 어차피 똑같은 iOS가 탑재되어 있고. 내가 보기에 아이패드의 입지는 매우 좁았고 (없었고), 금방 사장될 실패작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아이패드를 만져볼 기회가 있어 잠시 구경하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이거, 의외로 괜찮은데?”
그러나 내가 아이패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맥북도 있고, 아이폰도 있는 내게 아이패드는 여전히 사치였고 돈 낭비였다. 몇십만 원을 써가며 아이패드를 사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아이패드에 대한 욕망이 살그머니 내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험 기간이었다. 시험과 관련된 수많은 PDF, word 자료들을 아이폰에서 보자니 무리가 있었다. 휴대하긴 간편했으나 화면이 너무 작아서 효율이 떨어졌다. 맥북 에어를 통학 전철 안에서 펼치자니 굉장히 힘들었다. 뭔가 아이폰보단 크면서 맥북보단 부담되지 않는, 그런 새로운 기기가 내겐 필요했다. 그리고 그 욕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역시 아이패드였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기(혹은 경품으로 받기) 시작하는 아이패드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지난주, 매월 2500엔씩을 2년간 지불하는 플랜으로 소프트뱅크에서 계약을 맺고 손에 넣은 것은 64기가짜리 아이패드였다. 월 2500엔(약 3만 원)씩이라면 내 가계에도 그리 큰 부담은 아니리라 하는 판단에 내린 결정이었다. 술자리 한 번 줄이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아이패드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폰과 활용범위가 겹쳐서 필요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많이 보고 걱정도 많이 했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맥북도, 아이폰도 수행할 수 없는 아이패드만의 대단히 큰 역할이 존재했고 그 반대로 아이패드만이 수행할 수 없는 역할이 존재했다. 또한 세 기기는 iCloud와 Wi-fi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대단한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이 유기적인 연결은, “연속성”이라는 말로 설명이 될 듯하다. 아이폰에서 하던 일을 아이패드로 가져갈 수 있고, 또 여기서 바로 맥북으로 올 수 있다. 그때그때 상황과 용도에 맞게 기기만 선택하면 그만인 것이다.
같은 iOS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활용범위는 달랐다. 내 경우, 아이폰은 외부에서 SNS와 인터넷 서핑, 메일, 아이팟, 메모나 일정 관리 등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반면 아이패드는 “리더이자 뷰어”로 활용하고 있다. 똑같은 iOS인데 왜 활용하는 방향이 차이가 날까. 그 이유는 아이패드의 형태에서 기인한, 앱 디자인의 차이에 있었다. 같은 iOS지만, 전혀 다른 UI를 제공하기에 아이패드만의 맛을 느낄 수 있고, 그 고유의 활용범위가 생기는 것이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지 설명하기 위해, 내가 쓰는 어플들의 리뷰를 간단히 써본다.
경향 신문 앱은, 핵심 기사를 추려서 제공한다. 구독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고,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기사를 받아두면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볼 수 있다. 지면을 그대로 제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경제적이고, 아이패드 상에서 기사를 살펴보기 대단히 편하다.
한겨레의 경우, 한겨레 21과 한겨레신문 등 자사 매체를 “한겨레 가판대”에서 판매하고, pdf형식으로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다운로드한 매체는 가판대를 통해 보는 게 가능한데, 지면을 그대로 보고 있다는 만족감은 있으나, “아이패드만의 뭔가”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불편하다는 소리. 아이패드의 특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한겨레21도 마찬가지. 다만 오프라인에서 열람 가능한 점은 좋다. 가격은 한겨레 신문 일주일치, 한겨레 21 한 부가 각각 250엔으로, 저렴한 편이다. 한겨레 신문을 일 년 구독해도 12000엔이다.
TIME magazine은 대단히 황당했다. TIME US Edition 구독자만 디지털판 무료 이용이 가능했다. 일본에서 Asia Edition 을 구독할 경우, 타블렛 에디션판을 따로 구매해야 하고, 구독 비용이 한 부에 450엔이다. 안 그래도 아시아판엔 미국판의 특집 기사가 한 개월쯤 늦게 실려서 불만인데, 이게 무슨 차별..
근데 앱 자체는 되게 좋다. 한겨레처럼 무식하게 PDF로 싣는 게 아니라, “아이패드”스러운 형식으로 제공한다. 개별 페이지에서 텍스트부분만 스크롤을 하게 한다던가, 따로 버튼을 만들어 그걸 누르면 관련 내용 버플이 퐁 열린다던가, 링크를 넣어놓는다던가. 대단히 “읽는 재미가” 있다. (씨바스 리갈 광고를 지면에 동영상으로 넣어버리는 위엄이란..)
TED 앱도, TED+SUB앱도 대단히 잘 만들어져 있다. TED공식 앱에서는 “Inspire Me”라는 재밌는 메뉴를 제공하는데, 원하는 테마와 재생시간을 지정하면 추천하는 TED 강연 영상이 뜬다. 또한, 원하는 동영상을 선택하면 당연히 스트리밍으로 시청이 가능하며, 동시에 자동으로 “다운로드”를 시작하므로, 오프라인에서도 시청이 가능한 게 특징이자 장점이다. TED+SUB앱은 개인이 제작중인 비공식 어플로, TED영상을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다. TED공식앱보다 더 심플한 인터페이스가 특징. 하지만 최근 테드 공식 홈페이지의 “어떤 변화”로 인해, 동영상을 재생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 오류의 수정본이 지난주에 애플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애플에 제출된 앱은 심사를 통과해야 하므로 이번주 안에 업데이트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Bookcube를 통해서는 전자책의 “대출”이 가능하다. 내 경우 경기도립 과천 도서관에 등록이 되어 있기에, 과천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대출”할 수 있다. 대출기간은 약 일주일이며, 책을 다 봤다면 그 전에 반납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시에 대출할 수 있는 건 총 5권 까지이며, 책이 한번에 대출될 수 있는 인원도 한정되어 있다. 다만 과천 도서관의 경우 전자책 장서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점.
도서관에서 빌릴 수 없는 책은 구매할 수밖에 없다. 알라딘과 YES24에선 자체 개발한 뷰어를 통해 구입한 전자책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내 경우 알라딘을 쓰는데, 판매하고 있는 전자책의 수는 그리 차이가 없는 듯. 가격도 전자책이라고 결코 만만한 건 아니라 좀 망설여지긴 한다. 알라딘 앱의 경우, 반응 속도가 위의 북큐브 어플보다 빠르고 디자인이 약간 더 편하게 되어 있다.
다음은 Pages와 에버노트. 예전 같았으면 Pages를 구입하지 않고(자그마치 850엔이다. 지금 환율때문에 그렇지, 전엔 1000엔을 넘었던 기억이 난다) 에버노트로 때웠겠지만, iCloud를 십분 활용해보고픈 마음에 구입. 어차피 문서작성을 하는 건 맥의 Pages라, 이렇게 하는 게 편할 것 같기도 했다.
사실상, 물리적인 키보드가 없는 이상 아이패드에서 문서작성을 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맥에서 작성한 문서를 통학 중에 보고, 수정을 가하기에는 쓸만하다. (물론 인터넷에 접속된 상태에서 한 번 동기화를 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버노트의 경우, 갈수록 활용하는 일이 줄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에버노트가 물건인 것은 맞다. 데스크탑, 폰, 아이패드 어디에서나 연결이 되고, 문서는 항상 서버에서 동기화되니까. 활용방법을 좀 강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대충 내 아이패드의 활용 범위다. 그러나 이것도 아이패드 활용의 지극히 일부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iRig를 구입해서, 아이패드를 앰프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여하간 한 마디로 결론을 말하자면, 구입하세요아이패드는 대단히 매력적인 기기라는 것이다.
아이패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나처럼 아이패드의 활용성에 의문을 품던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아이패드는 “휴대용 기기”지만, 썩 휴대가 간편한 편은 아니다.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고, 행여 상처라도 날까봐 보호백도 챙겨 다녀야 한다. 이런 아이패드를 굳이 구입해야 하나. 구입해서 대체 뭐 그리 할 게 있나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써보니, 달랐던 것이다. 윈도우즈 모바일이 비실비실 맥을 이어나가던 스마트폰 시장을 아이폰으로 띄우고, 마찬가지로 비실비실하던 타블렛 PC 시장을 아이패드로 띄운 그의 판단이 실로 놀랍게 여겨질 따름이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이 물건으로 인해 또 한 차례 바뀌는 것은 아닐지. 스마트폰이 바꾼 내 일상을 아이패드는 앞으로 또 어떻게 바꿔줄 것인지, 앞으로가 대단히 기대된다.
블로그를 몇 번째 새로 세우는 건지 모르겠다. 한미르 블로그, 블로그인, 네이버 블로그, 태터툴즈, 티스토리, 텍스트큐브를 거쳐 이젠 워드프레스. 제대로 글을 쓴 기억은 얼마 없지만. 그나마 태터툴즈 운영했던 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SNS 서비스의 등장으로 블로그가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3년 전엔 그저 바보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트위터와 블로그는 그 용도부터 다르다, 그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SNS의 편리함에 나는 중독되었다. 블로그는 내가 세상에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런데 트위터가 생기면서, 나는 어렵게 블로그에 글을 게재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 블로깅을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쓰는 글을 봐주고, 반응을 보여줬다. 글자 140자 쓰는 데 드는 노력은 블로그에 비하면 훨씬 적은데 말이다. 소요시간으로 따지면 100배 이상 효율적인 게 아닐까. 그렇게 내가 수 년간 아끼던 Tattertools-tistory 블로그는 방치되었다. 2년 이상 버려졌다. 그렇게 방황하던 사이에 전에 쓰던 도메인은 타 업체에 빼앗겨버렸다. 방치되었던 블로그는 해킹을 당해, 스팸글이 가득 메워졌고, 운영진에 의해 접근 차단 조치를 당했다. 사실 상관없었다. 트위터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계를 느꼈다. 논쟁을 할 때, 논리를 효과적으로 엮어낼 수가 없었다. 무슨 시를 쓰는 것도 아닌데 축약에 축약을 해서, 결국 남는 게 선동적인 어구와 논리성이 결여된 주장뿐이었다. 이래서야 스포츠 신문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 식으로 논쟁에서 이겨봤자 기쁠 리가 없다. 아무도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블로그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되었다. “긴 글”을 쓸 공간이 내게는 필요했다. 설득력과 신뢰성을 보다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호스팅을 받고 블로그툴을 설치했다. 새로운 기분에서 시작해보기 위해 워드프레스를 선택했다. 테마를 세팅하고 플러그인을 설치하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블로깅에 대한 동경, 애정 같은 게 솟아오르더라. 두근거렸다.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의 수줍음과 같았다. 설렜다.
이 블로그엔 글이 빠르게 업데이트되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편 올라오면 다행이겠다. 그만큼 더 철저하게, 확실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블로깅을 해볼 생각이다. 내가 아직 어리고 지식수준도 낮지만, 되도록 ‘쓸만한(타인의 블로그의 글을 이런 식으로 평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래선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 단지 내 블로그의, 내 글에 대한 내 기준일 뿐이다)’ 글을 써보고 싶다. 지적 유희질, 그런 거 아니고, 애초에 난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그런 거 못한다. 그야말로 내 만족과 내 성장을 위해 설정한 자의적 기준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한동안 안 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 나라의 이 대학에 오고 이 학과를 지망한 건 다 이걸 위해서인데, 라는 사실이 이제서야 기억나더라.
옛날에 내가 티스토리에 올려왔던 글을 지금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나치게 조악한 까닭이다. 하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글들이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재활용이 가능한 글들은 수정하고 확장하여 이곳에 재발행할 생각이다. (사실 지난 블로그에서도,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고 지나치게 한심한 글들은 전부 비공개로 돌렸었다. 그렇게 하니 카테고리 하나 당 몇백 개의 포스트가 사라지던데..) 그리고 지금부터 새로이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보고 고쳐갈 생각이다. 그렇게 내 부족한 깊이와 지식이 커버된다면, 그보다 기쁠 수는 없겠지.